이지수 "나이젤을 사랑하는 마음과 시를 사랑하는 마음 동등하게 잡아"
황순종 "나이젤과 포샤, 서로에겐 '핵인싸'"

뮤지컬 '썸씽로튼'에서 나이젤과 포샤 역을 맡은 황순종, 이지수. 사진=김태윤 기자
뮤지컬 '썸씽로튼'에서 나이젤과 포샤 역을 맡은 황순종, 이지수. 사진=김태윤 기자

‘썸씽로튼’은 1595년 영국, 르네상스 시대를 배경으로 발표하는 작품마다 큰 성공을 거두며 국민 작가로 칭송받는 셰익스피어와 그의 그늘에 가려 고전하며 영세한 극단을 운영하고 있는 닉 바텀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닉 바텀의 동생 나이젤 바텀은 세심하고 감성적인 성격으로 사랑에 대해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인물이다. 그의 연인 포샤는 엄격한 청교도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시와 예술을 사랑하며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인물이다. 닉과 셰익스피어 등 여러 인물이 ‘썸씽로튼’에서 화려함과 즐거움을 그려나갈 때, 이들은 무대 한 켠을 지키며 자신들만의 사랑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썸씽로튼’의 나이젤, 포샤 역을 맡은 황순종, 이지수를 유니버설아트센터 근처의 한 카페에서 만나 진솔하고 유쾌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뮤지컬 '썸씽로튼'에서 나이젤과 포샤 역을 맡은 황순종, 이지수. 사진=김태윤 기자
뮤지컬 '썸씽로튼'에서 나이젤과 포샤 역을 맡은 황순종, 이지수. 사진=김태윤 기자

작품에 어떻게 합류하게 됐나.

이지수(이하 이) 갑작스럽게 합류하게 됐다. 확정되고 2주 뒤에 바로 연습에 들어갔다. 내한 공연을 정말 재밌게 봤다. 포샤와 나이젤의 첫 만남이 ‘레미제라블’의 오마주라고 하더라. 내 데뷔작이 ‘레미제라블’이라 포샤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기회가 돼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대본을 보면서도 이렇게까지 웃길 줄 몰랐는데 연습하면서 보니 정말 웃긴 공연이더라.

황순종(이하 황) 뮤지컬 ‘광화문 연가’의 제작진이 ‘썸씽로튼’ 제작진과 같다. 공연 중반쯤부터 내 스케줄을 물어보더니 끝나고 나서 함께 하자는 연락을 받았다. 그런데 그 전에 주위에서 ‘썸씽로튼’ 나이젤 역을 잘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오디션이 뜨면 볼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연락을 주셔서 감사했다. 작품이 재밌고 노래가 ‘내가 잘 부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종이가 사실 첫 음악 연습에 지각을 했다. 첫인상이 좋지 않았는데, 노래를 들으니까 소리가 너무 잘 어울리더라. 왜 뽑혔는지 알 것 같았다.

‘썸씽로튼’으로 처음 만났다고. 쉽게 친해졌나 아니면 오래 걸렸나.

나는 낯을 안 가린다. 쉽게 친해지는 편이다. 순종이가 낯을 많이 가리는 것 같더라.

그렇다. 편해지기까지 오래 걸린다. 지금은 많이 편해졌다. 나는 연기적으로 편하게 해주면 금방 친해질 수 있더라. 연기하기가 불편하면 아무리 사람이 좋아도 친해지기가 어렵다.

맞다. 순종이가 잘 맞춰준다.

‘잘 맞춰준다’는 건 애드리브 같은 건가?

누나가 애드리브를 더 해줬으면 좋겠는데, 오히려 연습 때 하던 것도 잘 안하더라.

맞다. 나는 공연 시작하면 정해진 것만 하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이 공연은 더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안 그래도 순종이가 ‘하던 것도 안 해?’라고 물어보길래 이제 정리가 돼가고 있으니 해보려고 한다.

뮤지컬 '썸씽로튼'에서 포샤 역을 맡은 이지수. 사진=김태윤 기자
뮤지컬 '썸씽로튼'에서 포샤 역을 맡은 이지수. 사진=김태윤 기자

오리지널 프로덕션이 있어서 더 자유로워지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

캐릭터 적으로는 틀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동선이나 농담, 애드리브 같은 건 허락을 해주신다. 포샤들도 대사가 다르다. “이렇게 서두르면 될 것도 안돼요”라는 대사도 나만 한다.

포샤랑 하는 씬은 동시에 하는 행동 등 약속이 많아서 다르게 할 수 없어 아쉽다. 정해진 것 안에서 다르게 해보려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은 다 정해진 걸 잘 지키는데 목적성을 잃지 않게 매번 다르게 주는 경우가 있다. 거기에 맞춰서 하는 게 재밌다.

아예 열어둔 부분도 있다. 예를 들어 ‘윌 파워’할 때 포샤와 나이젤은 윌에게 빠져있다는 모습만 보여주면 돼서, 마이크도 꺼져 있겠다 정말 마음대로 한다.

그럼 ‘윌 파워’ 때 특별히 생각나는 행동이 있나.

순종이는 일단 뛴다. 윌을 보고 싶어서 엄청 높게 뛴다. 그럼 나도 같이 뛰고 싶은데 입고 있는 드레스도 무겁고 발목이 좋지 않아서 ‘잘 뛰네~’하고 보고 있다.(웃음)

내가 까먹은 거다. 누나가 발목이 안 좋은 걸 아는데 내가 신나니까 뛰어버린 거지. 누나를 보니 웃고는 있는데 ‘그만 뛰어’ 이런 표정을 짓고 있더라. 그래서 뛰다가 갑자기 멈춰서 옆으로 손잡고 흔들고 그랬다.

재밌는 작품이다 보니 연습실도 재밌었겠다.

워낙 재밌는 분들이 많아서 그분들 구경하느라 재밌었다. ‘오늘은 뭘 할까’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연습실에서는 계속 열어두고 여러 시도를 하니까 그런 건 우리만 볼 수 있지 않나. 보는 재미가 있었다.

맞다. 우리는 구경했다. 서경수, 정원영, 육현욱 이 강력한 3인방이 있어서 보기만 해도 너무 재밌었다.

우리가 웃길 수 있는 포인트는 타이밍이 딱 맞아야 웃긴 것들이다. ‘이게 웃음이 터질까?’하는 고민도 많았다. 무대에 올라갔더니 관객들이 많이 웃어주셔서 좋았다. 그렇게까지 웃어주실 줄은 몰랐다.

그런데 막상 연습실에서 웃겼던 것들은 웃음이 안 터져서 아쉬웠다. 다른 배우들은 쇼적인 부분이 많은데 우리는 드라마 라인이라 말로 설명하고 얘기하는 거라 어려움이 있었다. 옆에서 형들이 날아다닐 때 우리가 나오면 지루해질 까봐 걱정했다.

뮤지컬 '썸씽로튼'에서 나이젤 역을 맡은 황순종. 사진=김태윤 기자
뮤지컬 '썸씽로튼'에서 나이젤 역을 맡은 황순종. 사진=김태윤 기자

나이젤과 포샤는 첫눈에 반한다. 첫눈에 반한다는 것을 믿나.

외모 같은 건 첫눈에 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살아가면서 어떤 스타일을 좋아한다 정도는 만들어졌으니까. 하지만 사람은 알아가는 거라고 생각해서 어떻게 첫눈에 반한다는 건지 모르겠다.

나도 첫눈에 반하는 건 안 믿었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 딱 그 사람 밖에 안보이면서 ‘이 사람이 언제 마음에 자리를 잡았지?’ 싶을 정도로 온몸에 채워지는 순간이 있었던 것 같다.

나이젤과 포샤의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선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었나.

포샤 같은 경우에는 나이젤과의 만남도 중요하지만 시를 사랑하는 마음이 나이젤을 사랑하는 마음과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냥 사랑 놀이 하는 커플로 보이지 않았으면 했던 거지. 포샤는 보수적인 집안에 갇혀 지내는 데도, 시를 사랑하는 마음을 숨길 수가 없고 그 에너지가 크구나 하는 게 보였으면 했다. 오히려 나이젤과의 만남이 시를 사랑하는 마음에 시너지를 더하는 거다. 같은 걸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그 마음이 더 커 보이니까 그 부분을 많이 생각했던 것 같다.

나이젤과 포샤가 커온 환경이나 구조 때문에 본인의 삶에서는 ‘아싸’인데 둘만의 영역에서는 서로 ‘핵인싸’인 거다. 서로 그렇게 잘 맞을 수가 없는 거지. 그냥 단순히 ‘시를 좋아한다’가 아니라 시를 숨 못 쉴 정도로 좋아하고, 시에 대해 간절하고 와다다 이야기할 정도로 좋아해야 첫눈에 반하는 것도 이해가 되고 둘이 귀엽고 사랑스러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뮤지컬 '썸씽로튼'에서 나이젤과 포샤 역을 맡은 황순종, 이지수. 사진=김태윤 기자
뮤지컬 '썸씽로튼'에서 나이젤과 포샤 역을 맡은 황순종, 이지수. 사진=김태윤 기자

다르게 말하면 ‘시 덕후’ 두 사람이 만난 거다.

그렇지. 그것도 아무도 안 물어봐 줘서 몇 년 동안 혼자 공부만 한 거다. 1년도 아니다. 10년 동안 혼자 좋아하다가 시를 아는 사람을 만난 거다. ‘이걸 알아요? 설마 이것도?’ 하면서 좋아했을 거다. 그래야 순간에 푹 빠질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럼 실제 두 사람은 문학작품 좋아하나.

이번에 찾아봤다. 소설을 좋아하긴 하는데 내가 읽는 건 가벼운 소설이다. 가벼운 소설에도 얻는 게 많지만, 고전을 통해 포샤와 나이젤이 왜 이렇게까지 빠져들었을까 알아보고 싶기도 했다. 희곡집 여러 개 묶인 걸 사서 읽어보기도 했다.

한때 많이 읽었다. 주변에서 선물을 주기도 해서 집에 시집도 많다. 근데 뮤지컬을 하게 되면서 대본을 보고 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 또 책을 읽고 싶지 않아서 요즘엔 많이 못 본 것 같다.

그럼 나이젤과 포샤는 왜 시를 사랑했을까.

단어 하나하나가 아름답다. 소리 내서 시를 읽는 장면이 있는데 말로 하다 보면 운율이 느껴진다. ‘황혼과 여명 사이라도 그 무엇도 빛과 사랑을 흐리지 못하리’ 이런 말들, 이미지가 그려지지 않나. 전에는 황혼, 여명이란 말도 잘 몰랐다. 보니까 황혼과 여명은 극명하게 다른 단어더라. 이런 걸 생각하며 썼을 테니 사랑고백을 이렇게 하니 참 아름답다고 느꼈다.

나는 최근에 ‘쇼미더머니’를 보면서 래퍼들이 천재라고 생각했다. 그들도 다 운율을 맞추는 거지 않나. 지금 래퍼 좋아하는 팬들이 많듯이 이 시대 나이젤, 포샤도 운율을 맞추고, 아름답게 써내는 사람을 그래서 사랑했지 않을까.

멋진 비유다. ‘쇼미더머니’를 챙겨 보나.

그렇다. 저번 시즌까지 다 봤다.

난 이번 시즌까지 다 봤다. 사실 ‘쇼미더머니’ 나가는 게 로망이다. 근데 주변 사람들이 부끄러워할 것 같다.

그럼 내가 노래 피처링 해줄게.

(인터뷰②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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