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배우였던 어머니에게 영향
"치유하고 관객이 힐링받는 배우 되고파"
"퇴근길 못해봐서 아쉬워…온라인 소통 계속"
"낯 가리는 성격, 무대 서면 돌변"

(인터뷰①에서 계속)

뮤지컬 '더데빌'에서 그레첸 역을 맡은 이지연. 사진=김태윤 기자
뮤지컬 '더데빌'에서 그레첸 역을 맡은 이지연. 사진=김태윤 기자

배우의 꿈을 꾼 건 언제부터였나.

어머니가 뮤지컬 배우셨다. 서울예술단 초기 단원이셨는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꿈을 접어야 했다. 고등학교 때 꿈에 대해서 말하던 시절, 엄마가 ‘뮤지컬 배우를 해서 엄마의 못다 한 꿈을 이뤄보지 않을래?’ 해주셨다. 어린 마음에 ‘뮤지컬이 뭔데?’ 그러다가 뮤지컬 ‘엘리자벳’을 보게 됐다. 깊게 감명받았고, 당장 무대로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운명처럼 다가와서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하면 할수록 연기, 노래, 춤을 다 같이 한다는 것에 매력을 느꼈다. 가요는 본인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면, 뮤지컬은 캐릭터로서 이야기하는 게 좋더라. 많은 오디션 끝에 소속사 알앤디웍스 오디션에 합격하게 됐다.

그때부터 노래에 재능이 있었나.

아니다. 어렸을 때 노래를 너무 못해서 친오빠가 부르지 말라고 할 정도였다. 그래도 노래하는 걸 좋아해서 노래방을 하루에 두 번씩 매일매일 가기도 했다. 그룹 god를 좋아해서 전곡을 다 따라부르기도 했고, 에일리나 다비치 노래를 많이 불렀다.

어머니가 무용 전공이시면 춤에 재능이 있었나.

그것도 아니다. 학창 시절에도 친구들이 춤만 추면 웃었다. 어머니가 연습실을 빌려서 기본자세를 한 시간 넘게 알려주시기도 했는데 정말 어렵더라. 입시할 때는 무용 연습을 엄청 열심히 했다. 문 열고 와서 문 닫고 가는 모범생이었는데 대학 가니 잘하는 친구들도 많고 자신감이 바닥을 치더라. ‘그라피티’의 김병진 안무감독이나 채현원 음악감독이 칭찬을 많이 해주며 자신감을 북돋아 주었다. 나도 ‘어딘가에 어머니의 피가 숨어있겠지’ 하며 열심히 했다. ‘검은사제들’ 끝나고는 무용 전공이냐는 소리를 많이 들어서 뿌듯했다.

뮤지컬 '더데빌'에서 그레첸 역을 맡은 이지연. 사진=김태윤 기자
뮤지컬 '더데빌'에서 그레첸 역을 맡은 이지연. 사진=김태윤 기자

앞으로 하고 싶은 캐릭터가 있다면.

정말 많다. 다 이야기해도 되나. (웃음) ‘호프’의 과거 호프와 호프. ‘틱틱붐’의 수잔, ‘아이다’의 아이다, ‘엘리자벳’의 엘리자벳, ‘셜록 홈즈’의 왓슨, ‘레드북’의 안나, ‘위키드’의 엘파바, ‘영웅’의 설희, ‘레미제라블’의 에포닌, ‘고스트’의 몰리, ‘킹키부츠’의 로렌, ‘맨오브라만차’의 라만차, ‘레베카’의 댄버스 부인까지. 제일 하고 싶은 역할은 아이다다.

더데빌의 엑스도 너무 잘할 것 같다.

하고 싶다. 차지연 선배가 무려 한 시즌에 두 엑스를 모두 해내지 않았나. 너무 대단하다. 나는 그렇게 못할 것 같다. 그럼 어떤 엑스가 하고 싶은가. 넘버의 음역대나 ‘마르베스’ 역할 등을 맡았으니 블랙 엑스를 해야 할 것 같은데, 배우로서 추구하는 방향은 화이트다 보니 화이트를 해보고 싶다. 사실 둘 다 하면 좋을 것 같다. (웃음)

배우로서 추구하는 방향이 무엇인가.

‘치유’에 목적을 두고 있다. 보는 분으로 하여금 캐릭터에 공감해서 치유가 되길 바란다. 작품에 대한 의도를 명확하게 드러내어 작품 자체에 위로를 받고 치유 받으시면 좋겠다. 그래서 나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캐릭터가 선했으면 좋겠다. ‘마르베스’ 역할을 했을 때도 ‘치유’라는 목적이 부합할 수 있도록 고민을 많이 했다. 내가 더 악하게 표현하고, 처절하게 죽어야 선의 힘으로 악마를 죽였을 때 사람들이 따뜻함과 벅참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선함’을 상당히 신경 쓰는 것 같다.

선은 모든 것을 이기는 것 같다. 성경에도 ‘선으로 악을 이기리라’는 구절이 있다. 결국 선함이 승리하는 것을 보면 따뜻해지고 평온해지는 것은 절대 불변이다.

뮤지컬 '더데빌'에서 그레첸 역을 맡은 이지연. 사진=김태윤 기자
뮤지컬 '더데빌'에서 그레첸 역을 맡은 이지연. 사진=김태윤 기자

요즘 취미는 무엇인가.

삶을 편안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작품을 하다 보니 배우가 너무 평온하게만 살면 표현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타락하거나 상처 입을 순 없으니, 간접적인 경험을 위해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찾아보고 있다. 원래는 느와르물이나 공포물을 전혀 못본다. ‘검은사제들’ 때도 마르베스 역을 내가 해서 다행이었다. 내 모습은 내가 볼 수 없으니까.(웃음) 양치하다가 가끔 표정 지어볼 때도 있는데 내가 보기에도 무서워서 거울을 못보곤 했다.

코로나19 시대에 데뷔해서 팬들을 만나지 못해 아쉽겠다.

퇴근길이라는 문화를 못 접해봐서 아쉽다. 어떻게 보셨는지, 힐링이 됐는지 이야기를 듣고 함께 공감해주고 싶다. 얼마 전에는 SNS를 통해 라이브 방송을 했다. 너무 많이 사랑해주셔서 감사하고 벅차서 ‘감사하다’는 말만 오만 번 하고 끈 것 같다. 공연에 대해 디테일 하게 알고 계시고 건강 걱정도 해주셨다. 좋은 기운을 많이 받아 앞으로도 자주 소통할 예정이다.

뮤지컬 '더데빌'에서 그레첸 역을 맡은 이지연. 사진=김태윤 기자
뮤지컬 '더데빌'에서 그레첸 역을 맡은 이지연. 사진=김태윤 기자

처음 무대에 섰을 때 기억이 나나.

데뷔작 ‘그라피티’는 대극장이어서 사람이 되게 많았다. 관객분들이 마스크를 끼고 계셔서 속상하기는 했지만 하얘서 잘 보이더라. 무대에 서있는데 관객이 보이니까 너무 짜릿했다. ‘이 맛에 하는구나. 공연하길 잘했다’ 싶었다.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더데빌’ 첫 공연은 부담이 크긴 했다. 앙상블이 아닌 역할로 무대에 서고, 대사와 넘버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도 항상 갈망했던 ‘내 연기, 내 노래’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낯을 가리는 것 같은데, 무대에 서면 돌변하나 보다.

어렸을 땐 안 그랬는데 언제부턴가 낯을 가리게 되더라. 입시할 때도 노래 불러보라고 하면 못 부르겠다고 빼다가 막상 시작하면 순간 집중해서 했다. 선생님이 ‘너는 스스로를 믿고 하면 되는데 왜 안 하느냐’는 얘기도 들었다. 얼마 전엔 공연 전에 체해서 배가 아프면 노래를 못하니 걱정을 엄청 했는데 무대에 오르는 순간 하나도 안 아프더라. 정말 신기했다.

뮤지컬 '더데빌'에서 그레첸 역을 맡은 이지연. 사진=김태윤 기자
뮤지컬 '더데빌'에서 그레첸 역을 맡은 이지연. 사진=김태윤 기자

마지막으로 ‘더데빌’을 보러 와 주시는 관객분들께 한마디 해달라.

관객의 마음 속에 각자만의 그레첸이 항상 살아 있으면 좋겠다. 선과 악의 갈림길에서 양심을 저버리고 악을 택하게 될 때 발버둥 치는 그레첸을 생각하며 선으로 향할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보다 따뜻하고 힐링되는 공연이니 연초에 힐링 받으러 많이 와주셨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뉴스컬처 (NEWSCULTUR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키워드

Tags #이지연 #더데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