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김진선 기자] "조선 시대에서 온 사람 같지 않게 보이려고, 움직임부터 말투까지 담백하게 하려고 했어요."

배우 심수영이 연극 '어나더 컨트리'를 통해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에서 보인 모습과 전혀 다른 매력을 드러내고 있다.'어나더 컨트리'는 파시즘과 대공황으로 혼란스러웠던 1930년대의 영국의 명문 공립학교를 배경으로 각기 다른 가치관을 지닌 청년들의 고뇌를 다룬 연극. 심수영은 단순하고 비열한 성격의 운동부 주장 ‘델러헤이’로 분한다.

배우 심수영. 사진= 김태윤 기자
배우 심수영. 사진= 김태윤 기자

'스웨그 에이지: 외쳐 조선'에서 조노 역을 맡아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낸 심수영. 웃음과 함께 극의 활기를 불어넣었다면, '어나더 컨트리'에서는 으름장을 놓고, 목소리를 높이는 인물로 변신했다. 조선 시대에서 1930년대 영국으로,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은 각기 다른 인물로 각기 다른 인물이 된 심수영. 앞으로의 가능성을 확실히 내보인 셈이다.

"영국 귀족들의 자제가 벌이는 정치판 싸움이잖아요(웃음).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지 고민과 동시에 매력으로 다가오더라고요."

심수영은 오디션은 토미 저드와 파울로를 봤다. 하지만 운동부 주장에 반칙을 일삼으며 뻔뻔한 면모를 드러내는 델러헤이는 심수영에게 잘 맞는 옷으로 보여졌다. 우선 큰 키에서 오는 위화감의 영향이 컸다.

"델러헤이는 잘못한 게 없어요. '나쁜 놈'이라는 타당성을 가져야 하는데 사실 극에서는 뭘 한 게 없거든요. 좀 불쌍하고 안타깝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물론, 반칙도 하고 권력 이용해서 학우들을 힘들게 한 건 명백한 잘못이죠. 하지만 델러헤이의 상황을 보면서 인물에 더 가깝게 다가갔어요."

때문에 델러헤이의 목소리에도 힘을 더할 수 있었다. 특정 사건이 발생하고 상황에 부닥친 델러헤이의 감정을 들여다봤다.

"사리사욕 때문에 델러헤이가 협박 아닌 협박을 당하게 되잖아요. 타당성 갖고 '어떻게 네가...'라고 말하는 거죠. 믿었는데 뒤통수친 거니까요. 아주 큰 배신감이 들었기에 다 무너진 거죠."

인물소개에 '단순하고 비열한 성격'이라고 돼 있는 델러헤이. 심수영의 생각은 어떨까.

"누구에게나 건드려서는 안 되는 무언가가 있잖아요. 델러헤이에게는 쟁탈한 권력을 위협할 때일 거예요. 제일 권력이 높은 학생으로, 무탈하게 졸업하고 싶은 인물이에요. 말년 병장처럼 졸업만 하면 탄탄대로가 펼쳐지겠죠.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하는 시기에 모종의 사건을 계기로 위협을 느끼게 된 거죠. 그래서 '왜 하필'이라고 해요. 심기가 불편하고 날이 서 있죠. 권력에 눈이 멀어있기에, 자신의 권력이 침투당했을 때 눈이 뒤집히는 거죠. 요즘 시대로 보면 꼰대일 수도 있어요. '너 어떻게 그렇게 살래!'라고 하기도 하잖아요."

꼰대 같고, 비열하고 단순한 인물이지만, 심수영과 비슷한 구석은 없을까. 심수영은 "운동 좋아하는 것, 그리고 승부역이 있다는 게 비슷하다"라고 말했다.

"경기에서 한 번 지고, 다른 친구들 비하해요. 델러헤이는 승부욕은 있지만 패한 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거죠. 다른 사람 책임으로 떠밀죠. 전 그렇진 않습니다(웃음)."

작년 초연에 이어, 올해 재연도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심수영이 생각하는 '어나더 컨트리'의 인기 요인은 '분위기'다.

"분위기에서 오는 매력이 있어요. 영국이라는 다른 나라의 시대적 배경도 있지만 무대, 배우들이 갖는 분위기와 작품 내 분위기가 '어나더 컨트리'의 큰 매력 포인트라고 생각해요."

tvN '더블캐스팅'에서 심사위원과 출연 배우로 함께 한 이지나 예술감독의 작품이기도 한 '어나더 컨트리'. 남다른 인연으로 맺어진 셈이다.

"이지나 예술감독과 작업하게 된 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더블캐스팅' 끝나고 배우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거든요. 어떤 인물로, 어떤 작품을 하게 돼도, 욕심을 부리기보다 '작품'으로 말하고 싶었어요."

배우 심수영. 사진= 김태윤 기자
배우 심수영. 사진= 김태윤 기자

대사로 감정을 담고 인물을 표현하는 연극에 출연하는만큼 심수영의 고민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뮤지컬에서 내보인 다른 강점으로 무대에 서야 하기 때문. 이 같은 고민은 도전을 향한 발걸음이 됐다.

"'어나더 컨트리'처럼 대사가 많은 작품도 처음이에요. 진중하게 작품의 시작과 끝에서 어떤 모습을 보일지 고민이 많았어요. 지금도 진행 중이고요. '외쳐 조선' 역시 마지막 공연 때까지도 고민이 멈추지 않았어요. 관객들이 작품을 또 보더라도, 똑같지 않고 디테일이 추가됐다는 걸 알아줬을 때 뿌듯해요. 뮤지컬은 퍼포먼스, 노래가 있어서 흥이 나요. 리듬과 박자를 타면서 보는 맛까지 느낄 수 있죠. 연극은 인물의 심리를 내뱉을 때 느끼는 묘미가 있어요. 인물의 감정을 오롯이 대사로 표현하면서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이잖아요. 배우의 고민을 농도 있게 녹아들게 하는 매력이 좋더라고요. 영화는 미묘한 움직임까지 담을 수 있고, 거기에 편집의 기술까지 들어가 전혀 다른 매력이 있어요. 기회가 된다면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고 싶어요."

특히 웃음을 안긴 '외쳐 조선'의 이미지가 드러날까 봐 더 고민했다고. 묵직하면서도 예민하고 히스테릭한 델러헤이가 되기 위해서 표현할 부분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초반에는 전작 뮤지컬 '스웨그 에이지:외쳐, 조선'의 모습이 보일까 봐 고민했어요. 조선 시대에서 영국으로 온 건데 한국 사람으로 보이지 않게, 조선에서 온 백성 모습이 드러나지 않게 말투, 움직임을 담백하게 하려고 했어요."

이런 심수영의 고민은 분명 '성장'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손사래를 저었다. 아직 멀었다고 너스레를 떨며 하하 웃었다.

"연기는 너무 어려워요. 정답이 없잖아요. 보는 분마다 관점이 달라서 많은 분의 공감을 자아내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평생 연구해야 한다고요. 성장보다는 '더 알아가는 과정'즈음 인 거 같아요."

사진=김태윤 기자

김진선 기자 carol@asiae.co.kr <저작권자ⓒ뉴스컬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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