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솔희 기자] 귀여운 신입사원, 견습 수도생, 역사 속 인물인 양녕과 장영실까지. 짧은 기간 동안 다양한 결을 지닌 인물을 오갔던 김준영이 이제는 말로 변신했다. 바로 뮤지컬 '알렉산더'에서 천재 경주마 알렉산더로 분한 것. 어려운 도전일 법 했지만 김준영은 때로는 사랑스럽게, 때로는 애틋하게 알렉산더를 그려내며 호평을 끌어내고 있다.

뮤지컬 '알렉산더'(연출 김운기, 제작사 MJStarfish)는 경마 열풍이 휩쓸었던 193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조교사 빌리와 천재 경주마 알렉산더의 운명적 만남을 그린다. 김준영은 알렉산더 역을 맡아 무대에 오르고 있다.

'알렉산더'는 시놉시스가 공개됐을 때부터 말을 주인공으로 한다는 사실에 많은 화제를 모았다. 김준영은 캐스팅 당시 알렉산더가 아닌 빌리 역으로 캐스팅됐다고. 그는 "처음에 빌리 역할을 연습하다가 창작진 분들과 연출님이 제안을 주셔서 알렉산더를 하게 됐다. 원래 노윤이 알렉산더였다. 둘이 바꾸는 게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첫 연습에 갔을 때 대본을 봤는데, 알렉산더가 정말 사랑스럽더라. 그런데 처음에는 내가 알렉산더가 아니었으니 '내가 하면 이상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제가 알렉산더가 됐다.(웃음) 그래서 알렉산더를 사랑스럽게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동물이 주인공이라고 해서 이상하다는 느낌은 안 들었다. 새로운 극이구나, 도전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연습 내내 즐거웠다"고 밝혔다.

처음 도전하는 2인극이자 첫 타이틀롤이다. 김준영은 "제가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도 해야 할 것들이 굉장히 많더라. 암기량 자체가 정말 많아서 쉽지 않을 수 있겠다는 걱정이 있었는데, 이제는 앞으로도 2인극을 더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두 명이 극을 이끌어 간다는 게 새로운 경험이었고, 준비를 하면서 정말 많이 배웠다"고 이야기했다.

"연습하는 과정에서는 암기량이나 고민해야 할 것들이 많다 보니 힘들었어요. 그런데 제가 100분 동안 무대에 계속 오르면서 극을 이끌어간다는 게 배우로서는 굉장히 재밌고 매력 있죠. 2인극 하면 떠오르는 매력적인 작품들이 많잖아요. '라흐마니노프'나 '쓰릴미' 같은? 이희준 작가님의 '최후진술'도 도전해보고 싶어요."

알렉산더 역을 맡은 배우들은 빌리의 친구인 대니 역으로도 무대에 올라야 한다. 1인 2역을 소화해야 하는 것. 김준영은 "대니는 악역처럼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점과 빌리의 오래된 친구처럼 보였으면 좋겠다는 걸 중점으로 뒀다. 또 알렉산더는 순수함이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야 알렉산더의 행동과 결정이 관객에게 납득이 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설명했다.

"알렉산더가 극 중 3살인데, 저는 사람으로 치면 10살 정도로 생각해요. 말의 나이를 계산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더라고요. 초등학생 정도로 생각하려고 했죠. 중고등학생이라고 생각하면..제 중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려 보면 순수하지가 않아서.(웃음) 10살 정도의 순수함이 맞다고 생각했어요."

김준영은 앞서 뮤지컬 '세종, 1446'에서도 1인 2역을 경험해본 바 있다. 그때의 경험이 이번 작품에서도 큰 도움이 됐을 터. 그는 "도움이 많이 됐다. 그때도 상반된 인물을 연기했고, 노래나 대사 톤에서 작은 변화를 주면서 연기했던 경험이 이번에도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이어 "알렉산더와 대니는 서 있는 것부터 다르게 하려고 했다. 대니는 조금 껄렁해 보이려고 하고, 알렉산더는 최대한 곧게 서 있으려고 한다. 걸음걸이나 행동부터 차이를 두고 있다. 알렉산더는 눈도 더 초롱초롱하게 뜨려고 노력한다"고 웃었다.

뮤지컬 '알렉산더'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표면적으로는 말과 인간의 우정을 보여주지만, 결국 이마저도 인간의 시선에서 동물을 바라본 게 아니냐는 것. 어쩔 수 없는 환경일지라도 동물을 도구로 보는 경향이 있는 대니와 알렉산더를 한 배우가 연기한다는 것도 모순적으로 다가온다. 알렉산더가 빌리를 만나 꿈과 열정을 일깨우지만, 그로 인해 안타까운 결말을 맞는다는 점도 그렇다. 이렇게 '알렉산더'는 모순을 통해 관객에게 생각할 거리를 안긴다.

이에 대해 김준영은 "빌리처럼 이상을 꿈꾸는 사람도 있지만 대니가 대부분 사람의 모습 아닐까. 동물을 아끼지만 어쨌든 본인이 밥을 먹고 살아야 하고, 본인의 상황이 각박하니까. 현실의 벽에 부딪힌 것이다. 현대인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연기하는 입장에서 알렉산더가 이상이라면 대니는 현실이라고 생각했다"고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그러면서 "표현하는 과정에서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 아닐까. 내가 하는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피해를 줄 수 있는. 꽃도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될 수 있지만 꺾인 꽃에게는 안 좋은 상황인 거니까. 이 이야기가 늘 우리 옆에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김준영의 알렉산더는 행복했을까. 김준영은 그렇다고 했다. 그는 "'각설탕 노래'가 왜 노래냐고 여쭤본 적이 있다. 작가님이 '죽음이 슬프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노래처럼. 저도 죽음이 슬프지 않게 보였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알렉산더가 숲에만 있었다고 행복했을까.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낫다'는 말을 하지 않나. 오래 산다고 행복한 건 아니니까. 자신의 모든 꿈을 이루고 나서 맞는 죽음도 행복하지 않을까"라고 자신이 생각하는 알렉산더의 결말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어 "저는 알렉산더가 죽음의 순간에도 행복했을 것 같다. 물론 두려움은 있겠지만 그 두려움보다 행복이 컸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했을 것이다. 중간에 알렉산더가 두려워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런 것처럼 자신의 내면을 알고 있는데도 경주를 선택하는 건 그게 더 행복하니까 그런 것 같다. 마지막 경주에 참가하지 못하고 숲으로 돌아갔다면 경주가 계속 생각나고, 그 생각이 평생을 괴롭혔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알렉산더는 계속해서 달리는 걸 꿈꿨고, 빌리는 알렉산더가 원하는 걸 줬다고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연기하고 있습니다. 물론 보시는 분에 따라 달라지시겠죠?"

알렉산더의 서사에서 엄마인 에보니삭스의 이야기도 큰 줄기를 차지한다. 김준영은 "허밍버드가 엄마의 마음을 대변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엄마의 모습이 투영된 존재인 것이다. 허밍버드가 알렉산더에게 주는 메시지는 뛰지 말라고 하는 거였으니까. 알렉산더의 깊은 내면에는 사실 엄마가 승부사의 눈빛을 한 것이 아니라 공포였다는 걸 알고 있었을 거다. 그런 두려움을 알고 있음에도 마지막에 경주를 선택한 건 행복하기 때문이다. 빌리와 알렉산더는 서로의 꿈을 위해 달려간 것 같다"고 했다.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은 작품이에요. 그런데 많은 생각을 하지 않고 보시면 더 재미있을 거에요.(웃음) 배우들도 공연하면서 '이 대사가 이런 거였구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죠. 작가님도 배우의 생각을 존중하셔서, 구체적으로 어떤 대사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말 안 해주셨고, 저도 그 안에 갇힐 것 같아 안 여쭤봤어요. 저만의 방식으로 표현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숲으로 돌아온 알렉산더가 장미 망토를 두르고 있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이 장면에 대해 김준영은 "배우마다 생각이 다르기도 하고, 보는 분들이 직접 감정을 느끼셨으면 좋겠어서 깊게 말씀드릴 수는 없다"고 운을 뗐다.

이어 "화환을 얻으면 당연히 숲이 자기를 반겨줄 거라고 생각하고 달린 거다. 그런데 막상 숲에 갔더니 '꽃의 시체'라고 표현한다. 알렉산더의 목표, 꿈이었을 수도 있는 숲에게 거절을 당한 거다. 저는 그게 죽음으로 다가올 때도 있고, 알렉산더가 어떤 다음 단계로 가는 거로 다가올 때가 있다. 그 장면은 보시는 분들의 영역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창작 초연 작품이다 보니 장면과 인물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우여곡절도 많았을 터. 김준영은 이미 잘 쓰여 있는 대본에 집중했다. 그는 "애매한 장면이 없이 분명하다. 그래서 작가님이 써놓으신 대로 했다. 오히려 넘버 가사가 시적인 부분이 많은데, 가사를 전부 해석해서 내 마음대로 하면 작가님이 원하는 느낌이 안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공연을 하면서 더 많은 생각이 들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매 공연 알렉산더가 느끼는 감정이 조금씩 다르다. 김준영은 "매 공연 드는 생각이 다르다. 그래서 표현되는 것도 조금씩 달라진다. 큰 변화는 없지만 어떨 때는 웃으면서 했다가, 또 어떨 때는 담담하게 한다. 정답이 없기 때문에 관객분들도 더 좋아하시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사진=서정준 객원기자

이솔희 기자 sh0403@asiae.co.kr <저작권자ⓒ뉴스컬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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