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중학교 때부터 사랑하던 작품"
"대본 한 줄마다 변화하는 인물, 어디에서도 볼 수 없어"
"무대만의 매력 충분히 느낄 수 있어"

[뉴스컬처 윤현지 기자] 손수건 하나만 들었을 뿐인데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는 것이 가능할까? 연극 ‘오만과 편견’의 배우들은 그걸 해낸다. 각 열 개에 가까운 역할을 소화하며 때로는 주책맞은 어머니로, 때로는 철없는 동생으로, 때로는 현명한 아가씨로 변신한다.

세 번째 ‘오만과 편견’의 캐스트에 이름을 올린 정우연의 각오는 조금 남다르다. 어렸을 때부터 키워온 작품에 대한 애정은 어느새 배우라는 직업과 함께 자신의 이름 세글자를 건 연극 무대로 피어났다.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너무 사랑하기에 쉽게 다가갈 수 없었던, 그러나 꼭 해내야만 했던 정우연의 연극 ‘오만과 편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연극 '오만과 편견'의 A1 역을 맡은 정우연. 사진=윤현지 기자
연극 '오만과 편견'의 A1 역을 맡은 정우연. 사진=윤현지 기자

‘오만과 편견’의 성덕(성공한 덕후)이라고 하더라. 작품의 어떤 점이 매력적이었나.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했다. 자기계발서보다는 소설류를 좋아했다. 중학교 때 처음 ‘오만과 편견’을 읽고 반했다. 그때부터 이 작품에 대한 집착이 시작됐다. 원래 좀 몰입하는 경향이 있다. 감독이나 배우에 꽂히면 필모그라피를 모두 훑는다. ‘오만과 편견’은 많은 인간 군상이 한 집에 모여있는 것이 흥미로웠다. 캐릭터의 색이 강한 작품이어서 인물만 모아둬도 사건사고가 끊임없이 벌어지겠다 싶었다.

작품에 합류하게 됐을 때 기분은 어땠나.

예전에 연극 ‘제인’을 할 때쯤 SNS를 통해 라이브 방송을 할 때 팬분들이 ‘오만과 편견’을 하면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하지만 나에겐 멀게 느껴졌다. 오히려 너무 사랑하면 바라만 보고 싶을 때가 있지 않나. 너무 사랑하는 작품이기에 오히려 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제안받고 나서는 심장이 너무 뛰어 잠을 못 잘 정도였다. 그런데 ‘오만과 편견’의 박소영 연출과 뮤지컬 ‘차미’를 같이 했는데 캐스팅 제의 이후 계속 연락을 하더라. ‘우연아, 하자. 무서워 하지 마’라고. 박소영 연출을 향한 신뢰가 커서 내가 아무리 헤매도 옳은 길로 인도해주지 않을까 하는 믿음이 생겼다. 그래서 ‘해보자’는 마음이 생겼다. 그전까지만 해도 무서운 마음이 크고, 내가 나에게 실망할 것 같아 작품을 시작하는 게 힘들었는데 좋은 말을 많이 해주어서 마음이 움직였고, 그날부터 잠이 잘 오더라.

연극 '오만과 편견'의 A1 역을 맡은 정우연. 사진=윤현지 기자
연극 '오만과 편견'의 A1 역을 맡은 정우연. 사진=윤현지 기자

대본으로 마주한 ‘오만과 편견’은 어땠나.

정말 재밌었다. 작품을 보지 않은 분들은 ‘오만과 편견’이 정극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만과 편견’은 사실 로맨틱 코미디의 시초이다. 웃을 수 있는 극은 생각보다 많지 않은데, 이 작품은 정말로 웃음이 많이 나는 극이라 즐겁게 볼 수 있다. 또 하나의 포인트는 2인극이라는 점이다. 한 명이 이렇게 많은 인물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무대예술에만 가능한 것이다. 더군다나 한 줄 한 줄마다 인물이 바뀐다. 이렇게 되면 내가 비난했던 사람이 결국엔 내가 연기하는 사람이라 스스로 비난하는 꼴이 된다. 이게 바로 무대의 재미인 것 같다.

연극 ‘제인’에서의 일인 다역도 큰 도움이 됐을 것 같다.

‘제인’을 할 때도 스터디를 많이 했다. ‘오만과 편견’도 그렇지만 중점적인 부분이 젠더프리인 점이다. 하지만 ‘제인’의 김운기 연출은 남자와 여자로 나누지 말고 ‘인류’의 이야기라는 것을 강조했다. 그래서 외형적인 변화보다는 인물의 목표에 중점을 두는 것에 집중할 수 있었다. 두 작품의 차이점은 ‘제인’에서는 한 역할이 자신의 분량을 다 하고 퇴장하면 다시 등장하지 않는데, ‘오만과 편견’은 아까 말했듯이 한 줄 한 줄 변화한다. 그렇기 때문에 캐릭터에 맞는 톤과 더 큰 격차를 두는 데 집중했다. 목소리를 바꿔서 내는 것이 쉬운 작업은 아니다. 목이 많이 상하기도 하고, 내 진짜 목소리가 아니기에 감정이 쉽게 붙지 않기 때문이다. 연출과 함께 감정선과 쓰지 않는 목소리 톤을 붙이는 작업을 열심히 했다.

연극 '오만과 편견'의 A1 역을 맡은 정우연. 사진=윤현지 기자
연극 '오만과 편견'의 A1 역을 맡은 정우연. 사진=윤현지 기자

연출을 향한 신뢰도가 굉장한 것 같다.

세 번째 올라오는 작품인데, 테이블 작업할 때 대본 한 줄마다 서브 텍스트와 가져가야 할 재치의 포인트가 무엇인지 마치 처음하는 것처럼 모두 설명해줬다. 대본에 빨려 들어가듯 집중할 수 있어서 박소영 연출을 사랑하게 됐다.(웃음) 서로의 신뢰와 믿음이 끈끈했고 그래서 좋은 작업이었다. ‘오만과 편견’의 ‘덕후’로서도 진지한 분석을 하는 느낌이라 ‘이래서 사람들이 스터디를 하는구나’ 싶더라.

상대 배우와의 호흡은 어떤가.

정말 좋고, 매번 배운다. A2 배우마다 너무 다르다. 내가 2인극을 많이 했는데, 2인극의 묘미가 그런 것 같다. 상대에 따라 그날그날 받게 되는 호흡이 다르고 공연 때마다 반하게 되는 인물이 달라진다. 작품이 재밌는 지점이 두 명이서 연기하지만, 어떤 장면에서는 사람이 많다가 순식간에 둘만 남는 지점이 있다. 그 지점이 배우마다 다르다. 공연 연습 막바지 런을 도는데, (홍)우진 배우와 런을 맞출 때였다. 그날 어떤 문제가 생겨 음향 없이 시작하게 됐다. 왈츠를 추는 장면에서 춤곡이 나오지 않는데도 박자에 맞춰 춤을 추니 오히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이 공간에 우리 둘만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날을 기점으로 수많은 사람 속 둘만이 존재하는 듯한 텐션을 느낄 수 있었다.

연극 '오만과 편견'의 A1 역을 맡은 정우연. 사진=윤현지 기자
연극 '오만과 편견'의 A1 역을 맡은 정우연. 사진=윤현지 기자

A1 배우들은 모두 처음 합류해서 의지가 됐겠다.

그렇다. 특히나 작품을 선택하는 데 더 힘이 됐다. 나 혼자 새로 합류했다면 과연 할 수 있었을까 싶다. 그래서 (현)석준 배우에 대한 존경심도 들었다. 아직 대사에 치이고 자유를 느낄 수 없는 상황에서 기존 캐스트들이 부럽기도 했다. 나도 빨리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같이 으쌰으쌰하다 보니 힘들었던 시기도 세 명이 같이 왔다. 이런 시기가 한 번쯤은 꼭 온다던데 새로운 캐스트들은 한꺼번에 왔다.(웃음) 번아웃이 온 날과 그다음 날은 완전히 놀았다. 콜린스의 무도회에서 춤까지 시작하니까 아예 손을 놓게 되더라. 파업하겠다고 당당하게 말한 적도 있다. 그러면 연출이 “우연씨, 정말 당당하시네요. 오늘만 봐 드릴게요.”하기도 했다.(웃음) 워낙 분량이 방대해 스케줄이 정말 체계적이었다. ‘하루에 5장씩 외우면 며칠이 남아서 그 다음 스텝으로 넘어간다’ 이랬다. 박소영 연출과 현석준이라는 기관차가 함께 있어서 가능했던 것 같다.

(인터뷰②에서 계속)

뉴스컬처 윤현지 yhj@knewscor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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