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씨에게 마음 연 이유…친해질 거란 '직감'"
"캐릭터의 감정, 음악에 모두 담겨있어"

뮤지컬 '스핏파이어 그릴'에서 퍼씨와 셸비 역을 맡은 유주혜, 방진의. 사진=김태윤 기자
뮤지컬 '스핏파이어 그릴'에서 퍼씨와 셸비 역을 맡은 유주혜, 방진의. 사진=김태윤 기자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팬클럽이에요.”

뮤지컬 ‘스핏파이어 그릴’의 인터뷰를 위해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유주혜와 방진의는 이야기를 위해 서로의 눈을 마주칠 때마다 꺄르륵 소리 내며 기분 좋은 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분위기 잡고 이야기 하는 게 처음인 것 같다”던 두 사람은 마치 ‘스핏파이어 그릴’ 속 퍼씨와 셸비처럼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감을 바탕으로 완벽한 유대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스핏파이어 그릴’은 5년간의 복역을 마치고 출소한 ‘퍼씨’가 위스콘신주의 작은 마을인 길리앗에 도착해 ‘한나’, ‘셸비’, ‘조’ 등 마을 사람들과 함께 지내며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서로 아픈 상처를 이해하고 치유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뮤지컬 '스핏파이어 그릴'에서 셸비 역을 맡은 방진의. 사진=김태윤 기자
뮤지컬 '스핏파이어 그릴'에서 셸비 역을 맡은 방진의. 사진=김태윤 기자

유주혜는 작품의 주인공인 퍼씨에 대해 “큰일을 당한 후 느끼는 분노나 화 때문에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린 아이”라며 작품의 첫 번째 넘버와 함께 캐릭터에 대해 설명했다. “첫 넘버가 ‘A Ring Around The Moon(달무리)’인데, 퍼씨가 달이라면 세상이 둘러싸고 있어서 빛을 밝히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퍼씨가 원래 가지고 있던 모습을 되찾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는데, 혼자가 아니라 길리앗의 사람과 자연을 만남으로써 회복하는 거죠.”

퍼씨에 대해 설명하는 유주혜의 설명을 들으면 감탄사가 나오지만, 그에게도 쉽지 않은 작품이었다. “역할이 명확하지만 모호하고, 모호하지만 명확해서 혼란스럽기도 했어요. 대사 지문이 상당히 디테일 하거든요.” 예를 들어 셸비가 대사를 하면 ‘퍼시는 빨간 버튼이 눌러진다’라는 지문이 있어요. 이런 내용이 명확하지만, 표현했을 떄 과연 ‘정답인가?’하는 의문도 들고 그랬죠. 다른 퍼씨 역의 친구들과 연출님과 많이 이야기를 나눴어요.”

셸비는 케일럽의 아내로 퍼씨를 선입견 없이 보고, 친구가 되어주는 인물이다. 하지만, 주인공으로써 많은 서사가 드러나는 퍼씨에 비해 셸비에 대한 정보는 매우 한정적인 편이다. 방진의는 “처음 대본을 봤을 땐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연구할수록 미궁에 빠지는 인물이었다”며 “모든 걸 내려놓고 인물을 만나기 시작했다. 셸비는 워낙 많은 사람을 만나는 인물이기 때문에 브릿지 역할을 다하며 함께 잘 섞이려고 했다”고 답했다.

퍼씨는 감옥에서 복역한 인물로 마을에 등장하자마자 여러 구설수에 휘말리는 인물이다. 셸비는 어떻게 이런 퍼씨를 선입견 없이 대할 수 있었을까. 방진의는 ‘직감’이라며 “사랑에 빠질 때와 비슷하다. ‘저 사람은 나랑 가까워질 것 같다’고 보자마자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라고 답했다.

“셸비는 평범하게 자랐고, 그 지역 안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순수해요. 남편한테 의지하는 것도 성격이 아니라 환경, 시대적인 영향이 컸던 것 같고요. 그래서 일라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일라이가 어떤 인물이었을까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가 구체적으로 만들어지면서 셸비도 서있을 수 있는 힘이 생겼어요.”

뮤지컬 '스핏파이어 그릴'에서 퍼씨와 셸비 역을 맡은 유주혜, 방진의. 사진=김태윤 기자
뮤지컬 '스핏파이어 그릴'에서 퍼씨와 셸비 역을 맡은 유주혜, 방진의. 사진=김태윤 기자

일라이는 ‘스핏파이어 그릴’의 주인 한나의 잃어버린 아들이자 작품 후반부 반전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인물이다. 퍼씨는 한나의 부탁으로 매일 숲에 빵을 한 덩어리씩 두고 가는데, 실은 실종된 줄 알았던 일라이가 ‘스핏파이어 그릴’ 주변을 맴돌며 퍼씨가 둔 빵으로 식사를 챙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퍼씨가 일라이에게 금방 마음을 열어주는 장면은 남자에게 적대심을 느끼는 모습을 떠올렸을 때 약간의 의문을 들게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 유주혜는 “빵을 두 계절 정도 가져다주는데 그간 길리앗에서 치유된 상태의 퍼씨였을 것이다”라며 “빵을 주는 행위를 통해 잃어버린 자신의 아이를 투영한 것은 아닐까 싶다”고 답했다. “퍼씨는 예민해 보이지만 착한 아이거든요. 섬세하고 작은 것에도 기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싫어하는 사람의 아이라도 생명이 자라나는 걸 느끼며 아이를 사랑하는 게 퍼씨의 본연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라이에게도 그렇게 드러나는 것 같아요.”

뮤지컬 '스핏파이어 그릴'. 사진=김태윤 기자
뮤지컬 '스핏파이어 그릴'에서 퍼씨 역을 맡은 유주혜. 사진=김태윤 기자

포크송을 기반으로 한 ‘스핏파이어 그릴’의 음악은 다양한 현악기와 타악기가 어우러져 관객의 귀를 사로잡다. 방진의 역시 음악이 가장 매력적이었다고 답하며 그만큼 어려움도 있었다고 언급했다. “음악감독님과 ‘숨’에 대해 이야기 많이 했어요. 저는 셸비와 반대로 성격이 급한 편이거든요. 길게 호흡하고 상대를 바라보면서 자세히 주시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바꾸려고 노력했어요. 저와 반대되는 인물을 만들어서 더 재밌던 것 같아요.”

“노래를 할 때 보통 발산하잖아요. 그런데 음악감독님이 내뱉지 말고 가지고 있으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셨어요. 내달리지 말고 음악에 몸을 맡기라고 하셨죠. 뭔가 표현하지 말고 음악에 올라타라는 조언도 하셨고요. 아직도 많이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작곡가가 캐릭터의 현재 마음을 음정으로 다 써놨다고 하셔서, 음악을 따라가면 그 감정을 저절로 알 수 있어요.”(유주혜)

“’들새’ 넘버 같은 경우에는 노래하고 있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그저 상대를 위로하고 있는 거죠. 노래 부르기에 급급했던 것 같은데, 다시 생각해보고 가장 중요한 위로의 말이 뭘까 생각하고 드라마가 음악에 붙어있도록 했죠.”(방진의)

뮤지컬 '스핏파이어 그릴'. 사진=김태윤 기자
뮤지컬 '스핏파이어 그릴'에서 퍼씨와 셸비 역을 맡은 유주혜, 방진의. 사진=김태윤 기자

결국, ‘스핏파이어 그릴’이 관객에게 주는 메시지는 뭘까. 유주혜는 한 관객의 이야기를 언급하며 답했다. “어떤 관객분이 아무 연고도 없는 사람들이 만나서 위로하고 상처를 치유해주는 과정을 뜻깊게 보셨다고 하셨어요. 정말로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는 것 같아요. 나 역시 독립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혼자 있을 때와 극장에서 사람을 만났을 때의 에너지가 달라요. ‘함께’의 의미가 우리 작품이 가진 메시지 같아요.”

이어 방진의는 사실 작품이 ‘치유와 힐링’하는 작품이라는 것을 체감하지 못했다고 한다. “사실 저는 처음에 이 작품이 치유, 힐링이 있다는 데 잘 못 느꼈어요. 그 속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었나 봐요. 하지만 그들이 있는 것 자체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잖아요. 우리가 이렇게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있구나, 저도 사람들과 주고 받는게 몽글몽글한 기분을 만들어 주는 것, 이게 정말 좋더라고요.”

(인터뷰②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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